장충동 Y주택


2025. 12. (in progress)

#0048




location : jang-chung-dong, seoul

program : 단독주택

project phase : 2025

site area : 88.44 ㎡

built area : 52.82 ㎡

total floor area : 198.75 ㎡

floor : b1f, 3f

team : OIOOARCHITECTS X 5SARCHITECTS


[건축주 Y의 수필]


대수선은 업사이클링이다.

이것은 대수선이다. 빈 땅에 올리는 신축이 아니고, 완성된 집에 들어가는 입주도 아니고, 완성된 집 구조를 변경하여 거주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 서 있는 집은 공동주택이 아니고 단독주택인데, 그냥 단독주택도, 다가구도 아닌 다중주택이다. 다중주택은 따로 분류한 통계도 찾기 어려울 만큼 드문 형태의 주택이다. 대수선은 30년 넘은 단독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23년 된 다중주택을 대수선하는 것은 여러모로 특이한 시도다. 특이하기에 재미있고, 그만큼 위태롭다.

인테리어가 정해져 있는 평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신축이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대수선은 옛 그림을 조금씩 지우면서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 과정은 타투 커버업이나 팔림프세스트를 연상케 한다.

좋은 타투 커버업은 기존 타투와 흉터를 선별적으로 제거하고 이용하고 변형해서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일반적인 타투보다 더 뛰어난 기술과 경험, 안목을 요한다고 한다. 팔림프세스트는 양피지나 점토판 등을 재사용하는 행위, 또는 그렇게 재사용된 표면을 의미한다. 이러한 유물은 복원하기 매우 까다롭지만, 고문헌 연구에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고 남겨진 자국을 복원해서 해석하는 것은 도시에서도 가능하다. 돈화문 월대 위 덮인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율곡로를 깎아 낮추는 등의 복원 작업이 그러하다. 율곡로 개선 이전의 돈화문을 기억하는 나에게 이러한 팔림프세스트는 단순히 잘된 문화재 복원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와 진보, 과거와 현재의 공존 등을 느끼게 한다.

이 건물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내부의 모든 것을 지우고 다시 만들고자 했다. 디지털 도구와 시뮬레이션에 익숙한 나로서는 그런 상상이 가장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워낸 공간에 60평대 아파트를 층별로 나눠 넣고자 계획했던 것 역시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가지는 자연스러운 한계였다. 그러나 철근콘크리트의 하중과 강도, 폐기물의 운반과 처리 등에 대한, 시뮬레이션 속에는 생략된 고민을 하면서 내 생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대수선 작업을 업사이클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수명이 다한 물건을 재사용하거나 버리지 않고 좋은 디자인으로 새롭게 만드는 '새활용'을 건물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지우고 버려야 할 것, 남기고 살려야 할 것을 세심하게 구분하고 무엇을 더할지, 어디를 연결할지 고민해서 기존의 건물보다 더 발전한 건물을 만들고자 한다. 이 과정의 핵심은 물론 건축사일 것이나 건축주로서 나의 역할 또한 자각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미로 같은 동네, 미궁 같은 건물

돌이켜보면 한국에서는 항상 신도시에 살아왔다. 88년 상계동에서 태어나 반포주공과 분당신도시를 거쳐 '오래된' 신도시인 강남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미국에서는 기숙사, 시골 단독, 원룸, 연립, 듀플렉스 등 다양한 주거 형태, 작은 마을(5만 명), 소도시(50만 명), 대도시, 교외 지역 등 여러 동네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신도시에서 아파트에 사는 삶, 특히 그것을 사회의 기준이자 궁극적 목표로 여기는 삶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귀국해서 다니기 시작한 회사는 광희동에 소재한다. 난 점심시간마다 사무실 주변을 답사했다. 거대한 빌딩과 호텔 뒤에 자리한 촘촘한 길과 건물들, 그 안에 자리 잡은 인쇄소와 비닐 공장, 이민자 식당과 슈퍼마켓, 노포 맛집과 젊은 식당들에 감탄했다. 동대문플라자에서 10분을 걸어오면 전혀 다른 느낌의 도시가 있고, 다시 10분을 걸어가면 남산의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골목마다 새로운 풍경과 분위기가 존재하고 아침, 점심, 저녁, 새벽 시간대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이 변화무쌍한 동네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나는 장충동 2가에 자취방을 구했고 동네 바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우리는 동네에서 전세를 구하고자 했으나 너무 멀거나, 좁거나, 오래되었거나, 보증금이 불안한 주택밖에 찾을 수 없었다. 답답함이 극에 달하던 와중에 이 집을 찾게 되었고, 나의 전세 예산과 그리 차이 나지 않는 낮은 가격에 덜컥 계약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평면이나 골조에 대한 고민, 단독주택이 가지는 대출에 대한 제약, 진입로 등에 대한 고민 하나 없이 계약했으니 참 어리석고 성급했던 것 같다.

계약한 건물은 신기했다. 아래에서 보면 높고 옆에서 보면 평범한데 뒤에서 보면 낮았다.

사람이 많이 살아서 너무 좁아 보였는데 한 바퀴 걷다 보면 정말 넓게 느껴졌다. 계단실을 통해서 돌아 올라가면 방향 감각이 흔들렸고, 방과 방 사이를 복도와 발코니로 이동하는 동선은 직관적이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으로는 방향도, 높이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경사지붕과 사선인 발코니 등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좁은 골목과 경사로를 지나 도착한 집에서 지층부터 서서히 도시 위로 올라가는 기분, 옥탑에 도착해 방향과 위치 감각을 되찾는 경험은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집을 계약할 때는 모든 벽을 털어내고 각 층이 비어 있는 평면에서 새롭게 집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벽을 허물 수 없으리라는 얘기를 듣고 명도가 끝난 건물을 다시 돌아보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층마다 풍경이 다르고 방향마다 분위기가 다른 건물. 한눈에 전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건물. 이것을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받아들일 때 이 집에 새 삶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미로 같은 동네에 자리 잡은 미궁 같은 건물, 그런 상상을 하게 되었다.



아늑한 우리 집

이 건물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작업은 건축사의 일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단점이 무엇이고, 내가 생각하는 장점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는 것은 건축주의 일이다.

계단실은 처음부터 신경이 쓰이는 공간이었다.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불편하기도 할 것 같고, 식기나 세탁물을 들고 나르는 것도 힘들고, 어린이가 다칠 수도 있는 공간이다. 연면적의 10% 이상을 차지하는데 활용 방안이 모호하고 관리하기 어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층을 건너뛰고 이동할 수 있으니, 사생활이 지켜지고 다양한 생활 방식이 가능하다. 1층과 옥상에서 늦게까지 놀더라도 2층에서는 방해받지 않고 잘 수 있다. 집 안 정리가 안 되어 있을 때 손님이 오더라도 계단실을 통해서 정리된 구역으로만 이동할 수도 있다.

좁은 방과 발코니도 단점이다. 아파트 발코니는 1.5m가 보통인데 0.9m 폭 발코니를 보니 정말 좁아 보였고 어떻게 활용할지 난감했다. 지층에 있는 0.6m 발코니는 정말 당황스러운 공간이다. 싱글 침대 하나 놓고 나면 책상 하나 들어가기 어려운 면적인 1.85m × 3.5m인 침실 역시 곤란한데, 이런 침실이 8개가 있는 것은 더욱 곤란하다. 그러나 일부 벽이라도 허물거나 개구부를 내서 면적이 넓어진다면, 매우 다양하고 재밌는 느낌의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모서리 너머 새로운 공간이 펼쳐지는 그런 집이라면 어린이도, 청소년도 좋아하는 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경사지붕의 활용도 아쉬운 부분이다. 3층 화장실은 사용하기도, 청소하기도 어려워 보이는데, 차지한 면적은 또 넓었다. 옆방에 있는 장 역시 수납공간으로 부족해 보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도 경사지붕이 있는데 창문과 하부장이 있어서 채광에도 도움이 되고 수납공간도 널찍하고 위에 선반까지 있는 것과 대비되었다. 단독주택에서, 특히 이렇게 조밀한 동네에서 단독주택이 진짜로 가지는 경관은 하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앞에 언제 뭐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경사지붕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층이 애매하다. 따로 문이 나 있는 것은 장점이나, 반지하라 곰팡이가 있고, 드라이에어리어도 너무 못생겼다. 계단 하부 공간은 벌레 살기 좋은 공간 외에는 쓸모가 없어 보인다. 반지하라서 세입자도 못 구하고, 벽을 못 터니 영업하기에도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또 넓어서 그냥 창고로 쓰기에는 아쉽다. 그래도 지층은 가장 넓은 공간이고 외부로 계단실을 통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지상과 다르게 무언가 특별한 기능과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면, 이 집이 가진 특별함을 살릴 수 있는 곳이 되리라 믿는다.



집의 과거와 미래

해당 부지는 1962년, 102번지에서 분할하면서 생긴다. 73년, 누군가 이 장소에 2층 목조 기와집을 등기했고 74년에 정영구 씨에게 매매한다. 78년, 건물 뒤쪽에 동호로가 생기고 필동까지 이어지던 동네는 허리가 잘리게 된다. 02년에 땅을 매입한 김선심 씨는 기존 건물을 허물고 현 건물을 지었으며 12년에 윤미숙 씨에게 증여한다. 25년, 내가 건물을 매입했다.

윤미숙 씨에 의하면, 아버지가 이 집을 지었을 때는 동국대학교 학생들을 하숙방 줄 생각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02년에 이런 하숙을 원하는 학생이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실제로 하숙방을 임차한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25년 여름, 내가 매입하던 시점에는 옥탑에 있는 위반건축물과 1층에 건물주 친척이, 3층에는 건물주가, 2층과 지층에는 9개의 1인 가구가 살고 있었다.

기존의 집은 43년생 김선심 씨가 필동의 동국대학교를 생각하며 지어졌지만, 2025년의 집에서는 67년생 윤미숙 씨와 그 친척, 광희동의 중앙아시아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정영구 씨의 28년, 김선심, 윤미숙 씨의 23년, 그리고 그간 이 장소를 집이라고 불렀을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또한, 나의 구매와 명도 요청으로 인해 동네를 떠나야만 한 사람들에게는 깊은 미안함을 느낀다.

2042년, 이 집이 40살이 되는 해에 나는 54살, 희정이는 46살이 되고 아이가(27년에 태어났다면) 15살을 맞게 될 것이다. 나와 희정이는 어떤 삶을 이곳에서 그려낼 수 있을까?

우리가 세상으로 초대한 아이는 어떤 삶을 그리고 있을까? 장충동 2가는, 필동은, 광희동은 어떠한 곳이 되어 있을까? 이 집에 방문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나와,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어갈까? 다양한 생각이 깊어진다.

우리 부부는 세상에 은혜를 갚고 싶다, 멋진 것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맞아서 만났다.

본부이자 안가이며, 작업실이자 놀이터가 되는 집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고, 한정된 자원으로 중심적 위치와 충분한 공간을 가지려다 보니 미로 같은 동네에 미궁과 같은 건물을 사서 아늑한 우리 집으로 대수선하는 묘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의 시도가 어떤 열매를 맺을지 알 수 없으니, 하늘에 맡길 뿐이다.

이것은 건축주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돌아봐야 하고 자신의 욕망을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써 내려간 글이다. 두서가 없으나 우리의 철학과 꿈을 담고자, 앞으로 설계 과정에서 미시적인 부분을 논의하고 고민하게 될 때 길잡이 삼고자 쓴 글이다.

우리는 좋은 집에서 산다고 행복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행복하게 살기 좋은 집은 있을 것 같다. 그러한 곳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읽고 내용을 고민해 주실 두 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글을 마친다.





장충동 Y주택


2025. 12. (in progress)



#0048










location : jang-chung-dong, seoul

program : 단독주택

project phase : 2025

site area : 88.44 ㎡

built area : 52.82 ㎡

total floor area : 198.75 ㎡

floor : b1f, 3f

team : OIOOARCHITECTS X 5SARCHITECTS


[건축주 Y의 수필]


대수선은 업사이클링이다.

이것은 대수선이다. 빈 땅에 올리는 신축이 아니고, 완성된 집에 들어가는 입주도 아니고, 완성된 집 구조를 변경하여 거주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 서 있는 집은 공동주택이 아니고 단독주택인데, 그냥 단독주택도, 다가구도 아닌 다중주택이다. 다중주택은 따로 분류한 통계도 찾기 어려울 만큼 드문 형태의 주택이다. 대수선은 30년 넘은 단독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23년 된 다중주택을 대수선하는 것은 여러모로 특이한 시도다. 특이하기에 재미있고, 그만큼 위태롭다.

인테리어가 정해져 있는 평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신축이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대수선은 옛 그림을 조금씩 지우면서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 과정은 타투 커버업이나 팔림프세스트를 연상케 한다.

좋은 타투 커버업은 기존 타투와 흉터를 선별적으로 제거하고 이용하고 변형해서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일반적인 타투보다 더 뛰어난 기술과 경험, 안목을 요한다고 한다. 팔림프세스트는 양피지나 점토판 등을 재사용하는 행위, 또는 그렇게 재사용된 표면을 의미한다. 이러한 유물은 복원하기 매우 까다롭지만, 고문헌 연구에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고 남겨진 자국을 복원해서 해석하는 것은 도시에서도 가능하다. 돈화문 월대 위 덮인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율곡로를 깎아 낮추는 등의 복원 작업이 그러하다. 율곡로 개선 이전의 돈화문을 기억하는 나에게 이러한 팔림프세스트는 단순히 잘된 문화재 복원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와 진보, 과거와 현재의 공존 등을 느끼게 한다.

이 건물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내부의 모든 것을 지우고 다시 만들고자 했다. 디지털 도구와 시뮬레이션에 익숙한 나로서는 그런 상상이 가장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워낸 공간에 60평대 아파트를 층별로 나눠 넣고자 계획했던 것 역시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가지는 자연스러운 한계였다. 그러나 철근콘크리트의 하중과 강도, 폐기물의 운반과 처리 등에 대한, 시뮬레이션 속에는 생략된 고민을 하면서 내 생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대수선 작업을 업사이클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수명이 다한 물건을 재사용하거나 버리지 않고 좋은 디자인으로 새롭게 만드는 '새활용'을 건물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지우고 버려야 할 것, 남기고 살려야 할 것을 세심하게 구분하고 무엇을 더할지, 어디를 연결할지 고민해서 기존의 건물보다 더 발전한 건물을 만들고자 한다. 이 과정의 핵심은 물론 건축사일 것이나 건축주로서 나의 역할 또한 자각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미로 같은 동네, 미궁 같은 건물

돌이켜보면 한국에서는 항상 신도시에 살아왔다. 88년 상계동에서 태어나 반포주공과 분당신도시를 거쳐 '오래된' 신도시인 강남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미국에서는 기숙사, 시골 단독, 원룸, 연립, 듀플렉스 등 다양한 주거 형태, 작은 마을(5만 명), 소도시(50만 명), 대도시, 교외 지역 등 여러 동네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신도시에서 아파트에 사는 삶, 특히 그것을 사회의 기준이자 궁극적 목표로 여기는 삶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귀국해서 다니기 시작한 회사는 광희동에 소재한다. 난 점심시간마다 사무실 주변을 답사했다. 거대한 빌딩과 호텔 뒤에 자리한 촘촘한 길과 건물들, 그 안에 자리 잡은 인쇄소와 비닐 공장, 이민자 식당과 슈퍼마켓, 노포 맛집과 젊은 식당들에 감탄했다. 동대문플라자에서 10분을 걸어오면 전혀 다른 느낌의 도시가 있고, 다시 10분을 걸어가면 남산의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골목마다 새로운 풍경과 분위기가 존재하고 아침, 점심, 저녁, 새벽 시간대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이 변화무쌍한 동네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나는 장충동 2가에 자취방을 구했고 동네 바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우리는 동네에서 전세를 구하고자 했으나 너무 멀거나, 좁거나, 오래되었거나, 보증금이 불안한 주택밖에 찾을 수 없었다. 답답함이 극에 달하던 와중에 이 집을 찾게 되었고, 나의 전세 예산과 그리 차이 나지 않는 낮은 가격에 덜컥 계약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평면이나 골조에 대한 고민, 단독주택이 가지는 대출에 대한 제약, 진입로 등에 대한 고민 하나 없이 계약했으니 참 어리석고 성급했던 것 같다.

계약한 건물은 신기했다. 아래에서 보면 높고 옆에서 보면 평범한데 뒤에서 보면 낮았다.

사람이 많이 살아서 너무 좁아 보였는데 한 바퀴 걷다 보면 정말 넓게 느껴졌다. 계단실을 통해서 돌아 올라가면 방향 감각이 흔들렸고, 방과 방 사이를 복도와 발코니로 이동하는 동선은 직관적이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으로는 방향도, 높이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경사지붕과 사선인 발코니 등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좁은 골목과 경사로를 지나 도착한 집에서 지층부터 서서히 도시 위로 올라가는 기분, 옥탑에 도착해 방향과 위치 감각을 되찾는 경험은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집을 계약할 때는 모든 벽을 털어내고 각 층이 비어 있는 평면에서 새롭게 집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벽을 허물 수 없으리라는 얘기를 듣고 명도가 끝난 건물을 다시 돌아보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층마다 풍경이 다르고 방향마다 분위기가 다른 건물. 한눈에 전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건물. 이것을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받아들일 때 이 집에 새 삶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미로 같은 동네에 자리 잡은 미궁 같은 건물, 그런 상상을 하게 되었다.



아늑한 우리 집

이 건물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작업은 건축사의 일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단점이 무엇이고, 내가 생각하는 장점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는 것은 건축주의 일이다.

계단실은 처음부터 신경이 쓰이는 공간이었다.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불편하기도 할 것 같고, 식기나 세탁물을 들고 나르는 것도 힘들고, 어린이가 다칠 수도 있는 공간이다. 연면적의 10% 이상을 차지하는데 활용 방안이 모호하고 관리하기 어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층을 건너뛰고 이동할 수 있으니, 사생활이 지켜지고 다양한 생활 방식이 가능하다. 1층과 옥상에서 늦게까지 놀더라도 2층에서는 방해받지 않고 잘 수 있다. 집 안 정리가 안 되어 있을 때 손님이 오더라도 계단실을 통해서 정리된 구역으로만 이동할 수도 있다.

좁은 방과 발코니도 단점이다. 아파트 발코니는 1.5m가 보통인데 0.9m 폭 발코니를 보니 정말 좁아 보였고 어떻게 활용할지 난감했다. 지층에 있는 0.6m 발코니는 정말 당황스러운 공간이다. 싱글 침대 하나 놓고 나면 책상 하나 들어가기 어려운 면적인 1.85m × 3.5m인 침실 역시 곤란한데, 이런 침실이 8개가 있는 것은 더욱 곤란하다. 그러나 일부 벽이라도 허물거나 개구부를 내서 면적이 넓어진다면, 매우 다양하고 재밌는 느낌의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모서리 너머 새로운 공간이 펼쳐지는 그런 집이라면 어린이도, 청소년도 좋아하는 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경사지붕의 활용도 아쉬운 부분이다. 3층 화장실은 사용하기도, 청소하기도 어려워 보이는데, 차지한 면적은 또 넓었다. 옆방에 있는 장 역시 수납공간으로 부족해 보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도 경사지붕이 있는데 창문과 하부장이 있어서 채광에도 도움이 되고 수납공간도 널찍하고 위에 선반까지 있는 것과 대비되었다. 단독주택에서, 특히 이렇게 조밀한 동네에서 단독주택이 진짜로 가지는 경관은 하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앞에 언제 뭐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경사지붕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층이 애매하다. 따로 문이 나 있는 것은 장점이나, 반지하라 곰팡이가 있고, 드라이에어리어도 너무 못생겼다. 계단 하부 공간은 벌레 살기 좋은 공간 외에는 쓸모가 없어 보인다. 반지하라서 세입자도 못 구하고, 벽을 못 터니 영업하기에도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또 넓어서 그냥 창고로 쓰기에는 아쉽다. 그래도 지층은 가장 넓은 공간이고 외부로 계단실을 통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지상과 다르게 무언가 특별한 기능과 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면, 이 집이 가진 특별함을 살릴 수 있는 곳이 되리라 믿는다.



집의 과거와 미래

해당 부지는 1962년, 102번지에서 분할하면서 생긴다. 73년, 누군가 이 장소에 2층 목조 기와집을 등기했고 74년에 정영구 씨에게 매매한다. 78년, 건물 뒤쪽에 동호로가 생기고 필동까지 이어지던 동네는 허리가 잘리게 된다. 02년에 땅을 매입한 김선심 씨는 기존 건물을 허물고 현 건물을 지었으며 12년에 윤미숙 씨에게 증여한다. 25년, 내가 건물을 매입했다.

윤미숙 씨에 의하면, 아버지가 이 집을 지었을 때는 동국대학교 학생들을 하숙방 줄 생각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02년에 이런 하숙을 원하는 학생이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실제로 하숙방을 임차한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25년 여름, 내가 매입하던 시점에는 옥탑에 있는 위반건축물과 1층에 건물주 친척이, 3층에는 건물주가, 2층과 지층에는 9개의 1인 가구가 살고 있었다.

기존의 집은 43년생 김선심 씨가 필동의 동국대학교를 생각하며 지어졌지만, 2025년의 집에서는 67년생 윤미숙 씨와 그 친척, 광희동의 중앙아시아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정영구 씨의 28년, 김선심, 윤미숙 씨의 23년, 그리고 그간 이 장소를 집이라고 불렀을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또한, 나의 구매와 명도 요청으로 인해 동네를 떠나야만 한 사람들에게는 깊은 미안함을 느낀다.

2042년, 이 집이 40살이 되는 해에 나는 54살, 희정이는 46살이 되고 아이가(27년에 태어났다면) 15살을 맞게 될 것이다. 나와 희정이는 어떤 삶을 이곳에서 그려낼 수 있을까?

우리가 세상으로 초대한 아이는 어떤 삶을 그리고 있을까? 장충동 2가는, 필동은, 광희동은 어떠한 곳이 되어 있을까? 이 집에 방문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나와,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어갈까? 다양한 생각이 깊어진다.

우리 부부는 세상에 은혜를 갚고 싶다, 멋진 것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맞아서 만났다.

본부이자 안가이며, 작업실이자 놀이터가 되는 집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고, 한정된 자원으로 중심적 위치와 충분한 공간을 가지려다 보니 미로 같은 동네에 미궁과 같은 건물을 사서 아늑한 우리 집으로 대수선하는 묘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의 시도가 어떤 열매를 맺을지 알 수 없으니, 하늘에 맡길 뿐이다.

이것은 건축주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돌아봐야 하고 자신의 욕망을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써 내려간 글이다. 두서가 없으나 우리의 철학과 꿈을 담고자, 앞으로 설계 과정에서 미시적인 부분을 논의하고 고민하게 될 때 길잡이 삼고자 쓴 글이다.

우리는 좋은 집에서 산다고 행복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행복하게 살기 좋은 집은 있을 것 같다. 그러한 곳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읽고 내용을 고민해 주실 두 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글을 마친다.